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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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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시집 '섬의 레음은 수평선 아래 있다'의 시(완) ♧ 같은 울음 다른 이름에 대하여 개굴개굴 울어서 개구리라 했다면 가가가가 울어서 가가비라 했겠죠 뉘더러 가가 하는지 귀 기울여 봤나요 맹꽁맹꽁 운다고 맹꽁이라 했다면 매앵해도 터지지 않는 입 맹마구리라 했겠죠 터질 듯 부풀다 마는 그 속 상상해 봤냐요 ♧ 쿨 파종이자 추수는 잡초가 전부였다 품었던 씨오쟁이 풀밭에 풀어놓고 꽃피는 계절 계절을 호미 쥐고 살았다 별꽃은 진쿨 콩버무리꽃은 콩쿨 모시풀은 모시쿨 닭의장풀은 고냉이쿨 개망초 망초는 천상쿨 쇠무릎풀은 ᄆᆞᆯᄆᆞ작쿨 모질게 굴다 봐도 쿨 하게 피는 잡초처럼 쿨 해지는 거 말고는 대책 없는 농부처럼 밥이든 쿨이든 시든 그게 그거라는 시인처럼 ♧ 귀순 삐라 고장섶 삐라 살려 주켄 삐라 ᄒᆞ난 산에서 ᄂᆞ려왔주기 이모니, 삐라가 무싱 건줄 알암수과? 고장.. 2024. 1. 4.
젊은시조문학회 작품집 '빛이 나는 증거품' 9호의 시(1) [특집 1] 나는 제주, 너는 여수 ♧ 나도 섬이라 – 김정숙 슬픔에 뿌릴 묻으면 아름다운 거라 늘 빤짝이다가도 품으면 먹먹한 거라 제주도 그리고 여수 몸을 더듬는 저녁이라 민낯이라 살가운 가막한 물빛이라 산인 듯 오름인 듯 이심전심 눈빛이라 묻어둔 역사의 그늘 새어나는 불빛이라 내리사랑 치사랑이 내리 반란 치반란이라고 백성을 쥐잡는 데 그만한 총도 없을 거라 모자母子섬 수장한 바다 숨어보는 달빛이라 바다가 거울이라 아른대는 섬들이라 느닷없는 소나기 술상을 뒤엎는 거라 밤바다 적시는 가을이라 무자년 그 가을이라 ♧ 남 같지 않아, 여수의 비 – 김미향 사람으로 태어난 게 죄라면 우린 유죄 그 시절에 태어난 게 죄라면 우린 유죄 여주와 제주에 산 게 죄라면 우린 유죄 눈물이 멈추지 않는 제단에 무릎 꿇고 .. 2024. 1. 3.
'혜향문학' 2023년 하반기의 시(1) [문인초대석] ♧ 병산서원에서 보내는 늦은 전언 - 서안나 지상에서 남은 일이란 한여름 팔작지붕 홑처마 그늘 따라 옮겨 앉는 일 게으르게 손톱 발톱 깎아 목백일홍 아래 묻어주고 헛담배 피워 먼 산을 조금 어지럽히는 햇살에 다친 무량한 풍경 불러들여 입교당 찬 대청마루에 풋잠으로 함께 깃드는 일 담벼락에 어린 흙내 나는 당신을 자주 지우곤 했다 하나와 둘 혹은 다시 하나가 되는 하회의 이치에 닿으면 나는 돌 틈을 맴돌고 당신은 당신으로 흐른다 삼천 권 고서를 쌓아두고 만대루에서 강학(講學)하는 밤 내 몸은 차고 슬픈 뇌옥 나는 나를 달려 나갈 수 없다 늙은 정인의 이마가 물빛으로 차고 넘칠 즈음 흰 뼈 몇 개로 나는 절연의 문장 속에서 서늘해질 것이다 목백일홍 꽃잎 강물에 풀어쓰는 새벽의 늦은 전언 당신을.. 2024. 1. 2.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4년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다사다난했던 지난해의 어두움을 거둬내고 저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처럼 밝은 날이 많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꿈 하나씩 지니고 삽시다. 그것이 현실성이 좀 부족한 것일지라도 언제나 새로운 활력소가 될 테니까요. 시간 날 때마다 찾아주시는 여러분들께 새해 인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새해에는 부디 - 임영준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사무친 날들이었습니다 그 뿌리 없는 교만과 원죄를 망각하면 반드시 철퇴를 내리신다는 것을 다들 감지하고 있으면서 잠시 눈 돌리는 사이 꼭 허방을 짚는 미물들이 사방에 널려 있기에 늘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 이정표조차 주의를 소홀히 하고 환락과 탐욕에 절어 자성의 기도는 고사하고 아집과 혼돈의 파랑만 크게 .. 2024. 1. 1.
계간 '제주문학' 2023년 겨울호의 시(1) ♧ 이태원 그날 – 강덕환 조, 조름에서 미, 밀지 맙서게 지, 지둘라부난 오, 오몽을 못허쿠다 푸, 푸더지쿠다 동, 동겼닥 놔, 놨닥 흐, 흥글쳐부난 가, 가점직허우다 아, 아가기여! 가, 가사쿠다 …, …… ♧ 늘 두려운 것이다 – 강봉수 오늘도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삼십년을 함께 살았는데 설레던 맘도 예전 같지 않고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던 날들이 희미하다 오늘도 그 사람 만날 수 있을까 도시엔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데 모두가 얼굴이 없다 손에 쥔 세상만 쳐다보는 사람들 밥상 앞에 앉은 아들도 얼굴이 없다 오늘도 무사할 수 있을까 달리는 자동차와 날마다 땅에 넘치고 바다를 메우는 쓰레기산 보이지 않게 허공을 떠도는 불순의 공기 오늘 무사할 수 있을까 늘 두려운 것이다 ♧ 물웅덩이 - 고영숙.. 2023. 12. 31.
'애월문학' 2023년 통권 14호의 시(2) ♧ 이런 날 – 김정수 이런 날은 바다에 가고 싶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배가 부르도록 마시고 싶다 이런 날은 바다에 가서 배가 꺼지도록 숨을 내쉬고 올 것이다 오다가 창 넓은 점빵이라도 보이거든 들어가 오래된 액자라도 보고 올 일이다 메모지가 있거든 당신이 그리워 왔다 갑니다 하고 써서 붙여놓고 올 일이다 ♧ 강나루此岸에서 - 김종호 강나루에 무연히 섰노라니 하루를 무겁게 굴러온 태양 불타는 강물로 잦아들 때 줄곧 따라온 바람일가, 툭 친다. *당신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강을 건너려고 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룻배는 언제 도착합니까? -그야 강주인의 마음이겠죠. *당신이 줄곧 걸어온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후회와 아픔과 슬픔, 그리고 그리움입니다. 그때마다 사정없이 들이받는 고약한.. 2023.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