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420 계간 '산림문학' 2023 겨울호의 시(1) [산림문학山林文學이 만난 문인] 김내식 ․ 김귀녀(1) ♧ 꽃과 시 – 김내식 우주로 날아가는 인공위성은 조립할 수 있지만 꽃은 그렇게 할 수 없지 꽃에는 비, 바람, 해와 별이 정성껏 만들어준 꽃가루가 있어 그 중심에서 꽃잎이 벙글어진다 시의 중심은 경험에서 나오는 삶의 지혜이자 감각이지 말장난이 아니라데, 내가 쓰는 진솔한 나의 시가 꽃이 되어진다면 비로소 생명을 얻어 가슴이 약동하기 시작하여 심장이 뛰는 소리 고요한 행간에서 들릴 것이다 ♧ 그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김내식 나무는 비탈에 뿌리박고도 바르게 서고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와 달, 바람과 비와 같은 복된 삶이 나무를 찾아오기에 그들을 겸허히 수용하여 행복할 수 있다 선각자도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 그냥 나무 밑에 홀로.. 2023. 12. 28. 김영순 시집 '밥 먹고 더 울기로 했다'의 시(9) ♧ 어떤 처방 맞벌이 20년 만에 집을 산 정희 언니 산에서 냇가에서 꽃도 돌도 들였는데 마당엔 객식구들만 와글와글 피어나 언제부터 동티났나, 까닭 없이 아파 와 큰 병원도 가보고 푸닥거리도 해봤지만 그 병엔 백약이 무효 하늘만 바라봤다지 하루는 어느 보살 처방전을 따라서 꽃과 나무 돌덩이마저 제자리에 갖다놓자 그것 참, 거짓말처럼 싹 나은 정희 언니 ♧ 아크릴사 수세미 간혹, 실 한 올이 구원일 때가 있다 광대가 외줄 타듯 아슬아슬 세상 안쪽 그 실낱 붙들어 안고, 외줄 타는 생이 있다 사람을 믿었다는 게 죄라면 죄인데 누가 보증 섰나, 가을 하늘 노을빛 고향 땅 언덕길 몰래 밟고 오는 추석 달 몇 년 만에 돌아온 고모의 하얀 손길 슬그머니 건네는 손뜨개 털수세미 그 한 올, 한 올 아니라면 저 달 어.. 2023. 12. 27. 나기철 시집 '담록빛 물방울'의 시(완) ♧ 메테오라 엄지손가락 끝에 묻은 밥풀떼기 같이 바위산 끝에 앉은 성 니콜라오스 수도원 끓는 밥물 찾아온 제비꽃! ♧ 이슬람 이 식당들 맛이 없다 아야 소피아, 블루 모스크 옛 사원 근처 술 한 잔 없다 양념하고 한잔하며 종교 없이도 ♧ 번갈아 노천 족욕 온천 몇 십 분 해도 갑자기 온 신경통 여전하다 바로 위 히에라 도시국가 귀족들 커다란 목욕탕 만 이천 명 원형경기장 아래 오순도순 마을들 발 담그고 위아래 번갈아 본다 ♧ 에게海 1 풍력 발전기 팔랑개비에 날려 유도화 분홍 잎새들 암록색 에게 바다로 떨어지는 유월 오후 에페소로 보낸 그의 편지가 젖는다 애걔, 애걔, ♧ 에게海 2 터키 그리스 주황색 지붕 그 색 올리브 냄새, 토마토 맛 유도화 그늘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도 에게海 곁에도 어딜 가도 그.. 2023. 12. 26. 월간 '우리詩' 12월호의 시(4) ♧ 끊어진 철길 - 신경림 끊어진 철길이 동네 앞을 지나고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푯말이 붙은 민통선 안 양지리에 사는 농사꾼 이철웅씨는 틈틈이 남방한계선 근처까지 가서 나무에서 자연꿀 따는 것이 사는 재미다 사이다병이나 맥주병에 넣어두었다가 네댓 병 모이면 서울로 가지고 올라간다 그는 친지들에게 꿀을 나누어 주며 말한다 “이게 남쪽벌 북쪽벌 함께 만든 꿀일세 벌한테서 배우세 벌한테서 본뜨세” 세밑 사흘 늦어 배달되는 신문을 보면서 농사꾼 이철웅씨는 남방한계선 근처 자연꿀따기는 올해부터는 그만두어야겠다 생각한다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푯말이 붙은 인근 버렸던 땅값 오르리라며 자식들 신바람 났지만 통일도 돈 가지고 하는 놀음인 것이 그는 슬프다 그에게서는 금강산 가는 철길뿐 아니라 서울 가는 버스길도 .. 2023. 12. 25. 김정숙 시집 '섬의 레음은 수평선 아래 있다'의 시(7) ♧ 목 놓아 울지 못한 사람들은 말에다 곡을 할까 어리광도 부리고 언강도 부려보곡 달리다 넘어지고 ᄃᆞᆮ당 푸더지곡 일하며 먹으며 졸고 일ᄒᆞ당 먹당도 졸곡 바람 불면 애타고 ᄇᆞ름 불민 애가 ᄌᆞᆽ곡 불볕에 숨이 멎고 ᄌᆞ작벳딘 숨그차지곡 다 죽여 막 억울하고 ᄆᆞᆫ 죽여부난 하도 칭원ᄒᆞ곡 살려거든 입 다물고 살구정ᄒᆞ건 속솜ᄒᆞ곡 할 수 없이 보내주고 ᄒᆞᆯ 수 엇엉 보내주곡 껴안아 다독여주며 쿰엉 어릅쓰러주곡 진짜 울음에는 눈물방울이 없다 목젖 아래서 곡곡하며 길들여질 때 예 살던 일삼칠 번지 사람이 사라졌다 ♧ 현무암 생각에 섬은 한라산을 낳고 한라산은 돌을 낳고 돌은 신을 낳고 설문대할망 하르방을 낳고 담을 낳고 울타리를 낳고 빌레를 낳고 머들을 낳고 잣을 낳고 궤를 낳고 탑을 낳고 집을 낳고.. 2023. 12. 24. 김혜연 시집 '근처에 살아요'의 시(6) ♧ 몽유 조약돌을 닮은 소녀가 웃는다 빈 주머니 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불행해지려고 하면 슬며시 느슨해지는 목줄 바람도 아는 길로만 흐르는 낮달 아래 소녀의 흰목이 골똘히 웃는다 돌아오는 길만 아는 파도 씻긴 표정들을 주워가는 손목들 악의는 부끄러움이 없어 송곳처럼 빛난다 깨진 소녀는 눈부신 불신으로 깊이 자라고 남겨진 표정들이 빈 주머니에 숨는다 내일은 내일이 사라지면 좋겠다 가득 찬 소녀가 모르게 풍화된다 ♧ 숨바꼭질 수요일과 목요일 사이로 사라진 사내에게선 가죽 허리띠 냄새가 났지 사내의 늙은 사냥개가 컹컹 사내를 찾아 다녔어 사내가 사라지기 전 시녀는 잠든 사내의 손목을 잘라 달아났지 잘린 손목은 썩어가면서도 시녀에게 명령을 해댔어 뭉개져가는 손목을 숨긴 채 시녀는 잊힌 모서리만 찾아다녔지 들.. 2023. 12. 23. 이전 1 ··· 51 52 53 54 55 56 57 ··· 7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