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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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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2) ♧ 으아리 망울은 아직 먼 길에 있었다 - 여연   빨간 벽돌 이층집은 호린 오후를 지붕에 널어놓고 안주인은 적요에 칩거 중   하안 꽃 피우는 으아리 보라 꽃 피우는 으아리 두 종을 데크 아래 심으며   언니 곧 꽃 필 거야 꽃 피면 보러 와   4월이었다 한도 설움도 많은 계절 진도 앞바다에 매달린 리본의 물결도 주기를 앞두고 눈물을 준비하던   한 번도 본 적 없는 반듯한 미간은 하야니 더 비수다 사람 사이 싹둑 가위질하던 솜씨로 안녕을 잘랐다 끈 끊어졌다 너와 나의 인연 줄은 여기까지라고   가는 게 세월만이 아니라며 돌아선 걸음걸음 불어오는 건   봄바람 아니다 겨울바람이다 남은 자 머리 위로 흩날리는 건 벚꽃 아니다 얼음꽃이다   으아리는 아직 엄지만 한 망울도 내밀지 못했고 흰 꽃.. 2024. 6. 13.
오승철 유고 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의 시조(3) ♧ 성산포 못 미쳐서   성산포 못 미쳐서 돌아설 걸 그랬다 일출봉 근처에 와도 뜨는 해를 못 보고 조간대 밥벌이하는 게들만 보고 왔다   게야 게야 달랑게야 너도 집이 있는 거니? 친구 따라 강남 가듯 허름한 집 사놨는데 오 년이 그냥 흘러도 시 한 편을 안 주네   성산포 어느 변두리 외등으로 나앉은 마을 문턱을 넘나드는 파도 소리 산새 소리 저기 저 삶 속에 나는 끼지 말 걸 그랬다     ♧ 청미래 꽃만 피어도   수많은 암자 중에 왜 이곳으로만 이끌릴까   불사는 못 이뤘지만 청미래 꽃만 피어도   쌍계암 목불을 안고 한없이 울고파라     ♧ 문득 만난 마을   간혹 산에서 만나는 팻말 잃어버린 마을 여기는 어디이고 이 우물은 누가 마셨을까 소개령 흩어진 사연 저 오름은 알고 있다 .. 2024. 6. 12.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1) ♧ 자선가 – 임보   돈은 벌기도 어렵지만 잘 쓰기도 쉽지 않다   재벌이지만 인색한 좀팽이도 있고 가진 것 별로 없지만 화끈한 자선가도 없지 않다   재벌이면서 화끈한 자선가는 없는가? ………………있다! 부영그룹의 이중근李重根 회장! 고향의 가난한 이웃들에게 동문의 어려운 동창생들에게 1억씩 수백억을 베풀었다   회사의 직원들이 출산할 때에도 1억의 장려금을 지급한다는 게 아닌가?   돈이 있어도 돈 쓸 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 고양이에게 배우다 - 박구미   고양이 두 마리 몸을 기댄 채 볕을 쬐고 있다   길 가는 사람 그림자에도 꿈쩍 않는다   - 나도 힘들어!   며칠째 그의 어두운 낯빛을 외면하다 아침 출근하는 등에다 비수를 날리고 말았다   살다 보면 예.. 2024. 6. 11.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3) ♧ 곱앙갈락*   곱앙갈락, 부르면 눈이 펑펑 내렸다 식게떡 먹고 싶어 흙을 탕탕 두드리면 김 모락모락 침떡 한 빗 나왔다   곱앙갈락, 어디로 숨어가라 하였을까 4․3에 울던 아이 달래주던 동백도 흰눈이 펑펑 내리면 합창하던 그 노래   ---* 곱앙갈락 : 아이들이 제사 치르는 흉내로 흙장난을 하며 부르는 노랫말의 구절. ‘숨어가기’의 제주어.     ♧ 물마중*     찢어진 고무신이 오늘의 기분이에요     생의 출구를 찾다가 생의 입구가 되어버렸죠 물마중 갈 때는 꼭 어린 리어카를 끌고 가요 모서리가 모서리를 밀어낼 때 방향은 잃어버린 지 오래, 뒹굴고 구겨지는 농롯길에 덜커덩덜커덩 혼자서 끌고 가는 건 정말 위태로웠죠 바다가 거세지길 바랐어요 함께 놀아줄 친구도 없이 바다에 내몰려 버.. 2024. 6. 10.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의 시(3) ♧ ᄆᆞᆷ뼈 해장국   몸과 마음 만나 한몸으로 들어가는 것   시퍼런 바닷속 유영하다 탁 끊긴 하루 너의 곰삭음이 어느 몸속으로 들어갈 때 다시 또 탁발 소리와 함께 사리를 만든다   뼈들의 아침, 천년의 세월 따라 어느 지구에 착지하여 펄펄 날던 몸 뼈들이 뚝- 휘어지는 날 서는 새벽녘, 곰삭듯 젖어 드는 등줄기 신음   뼈들은 다른 생을 위하여 자기를 내어준다 생 앞에 내어주는 육바라밀 화엄,보시를 한다   죽비소리 마음에 새긴다     ♧ 비움의 미학  가볍다는 것은 내려옴이다   가을 연서의 반가움은 가을 벤치에 앉아 마음을 읽는 것   별들의 고향 꿈꾸듯 미지 찾아갔다가 다시 오듯   한잔 술에 가슴 녹이며 지난날 시향에 젖어보는 샤브돈*의 밤거리   가볍다는 것은 그렇게 비움인 .. 2024. 6. 9.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의 시조(8) ♧ 산천단 곰솔   붉은 깃발 푸른 깃발 다 내린 오름 기슭   등 돌린 마을 향해 축문 외는 솔이 있다 바람결 혀짤배기소리 신음처럼 내뱉으며   누구를 위령하려고 하산 꿈을 접었을까   향기 없는 꽃만 피는 사월의 제단 앞에 지난 일 고해를 하듯 허리 살짝 굽힌 채   산지천 물길로도 끄지 못한 그날의 불길   타고 덴 자리마다 현무암 및 옹이가 돋아 그늘진 한라의 뒤꼍 보굿만 키웠던가   바늘잎 나란히 세워 비손하는 섬의 봄날   선 굵은 주름살을 나이테로 박제한 채 산천단 늙은 제관祭官들 제향을 또 준비한다     ♧ 다랑쉬 노을    봉분 같은 오름 사이 불기운이 번져간다   우두커니 홀로 남은 마을 표석 배경으로 못다 끈 가슴속 불길 저렇게라도 토하는지   타버린 집과 밭에 타.. 2024.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