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전체 글420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의 시조(4) ♧ 쌍계암   이왕에 쌍계암이 한라산에 앉을 거라면 영실계곡 그 어디쯤 종 하나 걸어놓고 산철쭉 물드는 소리 실어내면 어땠을까   점지 받지 못한 것이 이 땅 어디 있을까만 할머니 벗을 삼아 기르시는 저 계곡들 고고고 부르면 오는 수탉꼬리 같아라   어제는 남극노인성 떴다고 일러주고 오늘 밤 또 올 것 같다 스님께서 그러시네 천지간 외로운 곳이 서귀포 아니겠느냐   올라가면 법쟁이 오름 내려가면 하원마을 인연도 산에 들면 눈물 창창 인연을 낳나 계곡을 건너 들어와 탁발하는 하안 구름     ♧ 지귀도 스케치     그렇게 외로우면 섬 하나를 낳던지   길게 뻗은 한일자에 내려그은 등대 하나   어머니 숨비소리도 한줄기 가 닿는가     ♧ 가족사진(동시조)   사람은 그 누구나 잘못 없이 못.. 2024. 6. 19.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3) ♧ 징검돌다리 - 정순영   겨울바람에 쌩쌩 소릴 내며 괴롭게 흔들리던 늙은 나뭇가지에 맑고 환한 꽃이 피는 봄날얼음이 녹아 흐르는 요단강 징검돌다리를 육신의 욕망으로 건너다간 헛것을 짚어 꺼지지 않는 불속에 빠진다는 걸 비렁뱅이를 만나 참 빛을 듣고 십자가의 사랑이 흘리는 피에 젖어 믿고 새 생명을 얻으니 영육이 해맑아 가뿐하게 천국으로 건너가네     ♧ 사계절의 노래 - 조성례   창문을 훌쩍 넘어온 건달 바람에 온몸을 흔들며 춤을 추던 벽걸이 달력 흥에 겨워 펄떡 전기밥솥 위로 뛰어내린다   동시에 삼백예순다섯 날이 때구르르 함께 뛰어내린다 무대 위 가수들처럼 가지각색의 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봄날 꽃잎 벌어지는 소리 장마철 소나기 속에 난타가 울려 댄다 등등 무더운 여름 마당가 간이 수영장에서 .. 2024. 6. 18.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4) ♧ 은방울꽃 – 김신자     할망당 찾아갔다처음 본 꽃이었네   은방울도 더러 나와한숨씩 돌아갔네   양손은 빌고 또 빌며정성들인 그 시간   잘 되게 허여주서, 안 아프게 허여줍서   넋나간 영혼처럼 넋 돌아온 황생처럼   어머니 시린 등허리끌고 오는 꽃이었네     ♧ 패랭이꽃   패랭이를 모자로 한 번도 쓴 적 없네   뙤약볕 내려쬐는 밭일 논일 바닷일   자식들 먹여 살리려 얼굴 타던 아버지   그늘 되는 패랭이꽃 씌워주고 싶었네   새빨개진 그 양볼 가려주고 싶었네   시원한 바람 청하듯 햇살 막고 걷는 꽃     ♧ 애기똥풀   풀숲에 슬쩍 숨어날름날름 피면서   물애기 똥 쌌다고샛노랗게 알리네   엄마야기저귀 갈아줘방긋방긋 알리네        *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 2024. 6. 17.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의 시(4) ♧ 아이리시 커피   돌담길 에돌아 난간에 올라서니 오묘한 향기 코끝에 스미는구나   정갈한 서재, 눈발에 유혹하는 시나브로 연정淵靜이라   램프의 타오르는 불꽃은 투명한 두 볼에 홍조를 보내고   오묘한 그 향이 무엇인가 했더니   아이리시, 라구요   따뜻하게 내리쬐는 난간 모퉁이 때 이른 철쭉, 너의 오묘함이 詩샘에 빠지니 하- 일장춘몽이라     ♧ 칠게*   게는 세상이 질척질척해서 진흙 뻘에 산다는 말   쳐다보면 숨죽여 부둥킨다 선택되지 않길 바라는 것처럼   몇 백 원 차이로 수북한 것들   쌍 눈으로 바라보며 갯벌에 산다는 게들이 저들도 살고 싶어 얼마나 바동거렸을까  질퍽하고 매끄러운개흙 뒤집어쓰면 피부도 찰게 고왔을 것들 수경 매달아 세상 바라본 행복했던 마음 알까 .. 2024. 6. 16.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의 시조(9) ♧ 송냉이골 억새    몸빛이 흐려질수록 기억도 가물거린다   파도치던 푸른 힘줄도 바람을 탄 핏빛 함성도   무명빛 봉분들 앞에 다비를 준비할 때   억새라 불러도 좋다 이욱이라 불러도 좋다   넉시오름 능선 따라 한 점 불티로 스러져도 좋다   산사람 붉은 묘비명 고쳐 쓸 수 있다면   ---*1949년 1월 10일,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에서 벌어진 토벌대와 무장대 간 교전으로 사망한 무장대의 합동묘역이 있는 4․3유적지.     ♧ 아끈다랑쉬   세화에서 송당 사이 다랑쉬 아래 아끈다랑쉬   일자무식 까막눈이 난쟁이 홍 씨* 같네 글보다 산과 들의 말 더 많이 알았던 이   소와 말 흩고 부르던 휘파람 소리 위에 어이어이 어 아 흐응- 노랫가락 더하면 강직된 근육을 풀고 노루도 따.. 2024. 6. 15.
강동완 시집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10) ♧ 따뜻한 별      너내 그거 아니 난 다른 별에서 왔어 가시오페아자리 세 번째 별에서 왔지 이 별은 죽은 사람들의 영혼으로 만들어진 별이야 너희 별에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이 별로 온단다 아름답고 빛보다 빠른 운석을 타고 왔지 우리 별에는 거대한 폭포가 있고 공룡들의 살아 폭포 여에는 짙은 꽃항기 나는 백합 꽃밭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꽃 속에는 팅커벨이라는 아주 자그만 요정이 살지 나에게는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이주 강력한 힘이 있어 시들어버린 꽃을 만지면 꽃이 짙은 향기를 뿜으며 다시 아름답게 피어나고 가느다란 줄기를 쓰다듬으면 노란 열매가 맺혀지 너희 별에 죽음에 너무 기울어진 가여운 영혼들의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할 거야     이건 나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처가 있어 .. 2024.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