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17 조직형 시집 '천 개의 질문' 발간 ♧ 시인의 말 나는 위로 받고 싶다는 말을 언제나 위로하고 싶다고 말하는 마음이다 늘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언제나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해 주위를 맴돌았다 들어갈 수 있을까 멈칫거리며 용기를 내어 시작이라고 발을 디밀어본다 힘주어 입 다물고 참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제 입을 떼기 시작했으니 내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을 찾아가고 싶다 ♧ 바람의 언덕 초원을 질주하는 말의 갈기처럼 생살을 찢는 바람에 등짝을 눕히고 함께 달리는 풀들이 있다 바람이 절벽을 타고 오르며 휘두르는 채찍에 눕고 눕히며 일어서고 일으키며 온몸이 찢긴다 보고도 눈감고 모른 척 물러서는 대양이 있다 뼈도 없이 풀들은 뿌리에 묶여.. 2024. 8. 15.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의 시(3) ♧ 삶의 한 방식 정직만이 삶의 방식 그리 쉽지 않았으리 한 소절 마디마디 결구를 다지며 텅 빈 속 채우려 했던 엇나가는 곁가지 수런수런 댓잎 소리 바람의 말 흘리나 반짝이는 그림자 둘 곳 없는 남루에 한뎃잠 깊이 내리니 뿌리마저 허공이네 ♧ 너의 이해 돗바늘 탱자 가시 한순간 찔린 손등 혹독히 파고들어 농이 차 뭉크러져도 그 누가 알아차릴까 이해했던 단 하나 덧난 가지 싹둑 자른 냉정한 오후도 가시는 눈물 같고 어쩌면 온순해져 서로가 맞닿은 자리 비켜 앉던 그 잠시 새순마저 초록으로 땡볕 여름 견디며 저를 눌러 넓힌 자리 그늘이 되는데 난 그저 지나쳐 온 날, 불쑥 솟는 가시였네 ♧.. 2024. 8. 14. 장영춘 시집 '달그락, 봄'의 시(6) ♧ 족쇄를 풀어춰 오늘도 탈출을 꿈꾼다, 저 문만 나서면 푸른 날 성긴 시간 태초의 그 길 따라 날마다 귀향을 꿈꾸는 슬픈 눈의 목각 기린 창 너머 초록 잎새 마구마구 손 흔들면 아프리카 드넓은 저 질주의 본능으로 소나기 맞으러 간다, 겅중겅중 목 빼 들고 캄캄한 밤하늘에 별빛 총총 수놓으면 코뿔소 작은 샘터에 무리 지며 마중 오겠지 마음은 이미 달리고 있어 족쇄를 풀어줘 ♧ 팔월의 시 생명이 있는 것들은 독기 어린 얼굴로 팔월의 들판 아래 만장일치 모여들어 비장한 다짐을 한다 씨알 한 톨 남기리 수은주 빨간 눈금 내려갈 줄 모르고 앞 다투며 달려오는 어긋난 시간 속에 볕에다 내다 걸어도 파랗게 익지 못하는 뜨거운 바.. 2024. 8. 13.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의 시조(9) ♧ 소라 1 엎디어 외로운 넋 깨어져도 살리라네 내 살 속 파도 소리 휘휘 트는 마을 벌엔 청핏줄 이어갈 오늘 부활하는 태양이여 Ⅱ 쫘악 벌리는 입 트여오는 푸른 하늘 서귀포 뱃고동사 살 후비는 빛일 진데 이 산천 저무는 날까지 예서 예서 살려니 ♧ 한강교 위에서 Ⅰ 불빛들이 썰매 타는 빙판, 바람 일어 이리 출렁이는 한 하늘의 아픔을 으깨어 눈뭉치 씹으면 아아, 찝찔한 그녀의 입술 Ⅱ 서울의 한 모퉁일 싣고 열차여 어디 가나? 발가락 얼어붙고 핏줄조차 끊겼어도 이 온몸 고향 찾아 가느니 ♧ 자배봉 문간에서 보는 산은 아득히 흐려 뵀다 버린 사람은 더 멀리 갔나니 활화산 머물던 터에 빈 노을만 붉었다.. 2024. 8. 12. 월간 '우리詩' 8월호의 시(2) ♧ 짝사랑 오지 않는다는 비가 오네 생각 속에 아직 비 내리지 않는데 마음 열고 햇살 받으려 했던 부끄러운 것들 벌써 젖고 있네 햇살에 바싹 말리려는 것들, 잘 말려 접어 두려 했던 것들, 미처 마음의 지붕을 덮어 놓지 않아서 돌아오지 못한 발목처럼 들판에 서 있네 돌아갈 곳 없는 비석처럼 거리에서 비 맞고 있네 마음 밖에서 한번도 비에 젖어 본 적 없었던 마음에 붉디붉은 것들 다 도드라지네 나무의 뿌리들이 굵은 핏줄처럼 산길 가운데로 뻗치듯 오지 않는다는 비 오는 날 나는야 당신 오가는 길목에 서서 비석이 되겠네 당신 가슴에 마음의 탁본을 뜨겠네 당신의 눈길 앞에선 새붉게 읽히고 싶네 ♧ 황사 - 이상연 사계절 없는 부스스한 거울을 한참 응시하다 노트.. 2024. 8. 11.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의 시(14) ♧ 밥심 오랜 세월 견디어온 고목 같은 식당 이름 식당 귀퉁이 처마 밑에 비루먹은 나무 한 그루 천덕꾸러기처럼 모질게 자라다 어느 날 불끈 밥심으로 식당 지붕을 뚫고 하늘 향해 두 팔 벌렸다 쇠락해 가는 지붕 위에서 공중에 묘판을 만들고 불끈불끈 밥심으로 봄을 피워 올렸다 ♧ 순종 당기세요 우린 참 불편한 관계다 내가 가까이 기는 것을 거부하듯 그대의 무게가 나를 자꾸 밀어낸다 여기까지 용기를 내어 찾아왔는데 거절 아닌 거절 같은 한발 뒤로 물러서라니 그렇다고 그대가 내게로 걸어오겠다는 약속도 아니 면서 그래도 당기세요 댄스를 신청하듯 공손히 예의를 갖춰 오른발을 사뿐히 뒤로 무릎 굽히면서 투명한 사각 하늘을 향하여 .. 2024. 8. 10. 이전 1 ··· 12 13 14 15 16 17 18 ··· 7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