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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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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성 시조집 '메께라'의 시조(14) ♧ 서우봉 휘파람새    바람 드센 섬에서는 파도에도 멍이 드나 가파르게 잘려나간 몬주기알 벼랑 아래   근 백 년 멍자국처럼 시퍼렇게 이는 물빛   머리 푼 회리바람 삼각파도 몰고 오면 메밀꽃 핀 물마루에 절을 하는 북촌 바다 대 끊긴 제삿날 아침 파랑경보가 내리고   오래전 탄흔單痕 같은 진지동굴 구멍마다 비명에 간 휘파람새 울음소리 묻은 뜻은   여태도 참회의 굿판 열지 못한 까닭이다     ♧ 쥐불놀이    1.   거문오름 검은 숲에 장작불이 활활 탄다     짐승 같은 바람 소리 살갗을 부풀리고 걸어선 갈 수 없는 굼부리 능선 따라 죽창을 불태우며 한껏 달뜬 불티들이 죄 없는 영혼인 양 별로 뜬 초승 하늘, 모반의 칼날 하나 싸느랗게 걸릴 동안 연착된 봄꽃 서넛 .. 2024. 7. 28.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6) ♧ 우연 한 장 – 홍해리   “아저씨, 미아5동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요?” “미아5동으로 가야지요!” 머리 허연 노파가 길을 묻고 내가 답한다   우이동 솔밭공원 옆 골목길에서 길을 잃고 쩔쩔매고 있었다 아내도 길을 못 찾고 이리저리 헤매다 떠났다 몇 해 전 일이었다   지금은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 아직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지 하늘을 망연히 올려다보니 어느새 저녁 하늘이 나즈막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서는 부디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일이 없기를, 인생길이 막막한 미로라 하지만 발길 가는 대로 가다 보면 끝이 있는 것인가     ♧ 은하수를 보며 - 방순미    여자를 보면 우주가 보인다   누군가의 어머니이었고 아내였으며 딸이자 누군가의 손녀다   별.. 2024. 7. 27.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8) ♧ 당산봉 산자고    해풍을 가로막는 의연한 당오름은 누군가 넘볼까봐 요새를 만들었나 우뚝 신 자연 전망대 비탈진 오름 자락에   누가 피라 했나 봐 곱게 피라 했나 봐 밤마다 길둥근 꽃대 슬몃슬몃 내밀다 벙그는 백합과 산자고 다른 이름 까치무릇   봄바람 섬을 덮어 추억을 되새기면 열정의 꽃몸살로 고운 꽃잎 펼치네 아니다 그게 아니다 여섯 갈래 창날이다   바닷길 쳐들어온 어느 누구였던가 백제의 해적인가 고려의 삼별초인가 툭하면 밀어닥치는 노략질 왜구인가   뾰족한 장날마다 여전사 핏방울인 듯 희붉은 꽃잎 사이 얼룩진 상처 품고 쓸쓸한 당산봉 기슭 말없이 핀 산자고      ♧ 펜도롱*    이녁 몸 생각허영 술 하영 먹지 맙서   잔소리 무색하게 오늘도 .. 2024. 7. 26.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의 시(8) ♧ 바다, 너에게로    해안 길 걷다 속울음 터질 때 바다, 네게로 달린다   바다는 소리를 만들고 나는 가사를 만들고   그 속절 음 따라 몸부림치는     ♧ 이 사람아    그냥 고맙고 대견했었지   곡예사의 사랑처럼 애리애리하게 태어나 아파서 힘들어서 그랬고 힘이 없어 몸이 울고 눈물이 말라 마음이 아리도록 펑펑 그랬지   새끼 놓칠까 봐 아파 울고 어미 잃을까 봐 속울음 삼기며   칠성님께 부처님께 조왕신에 문전신에 매달리며 애면글면 그랬지 애간장 타는 가습 핏물 되어 녹는 이 마음 누가 알까 힘든 고비 넘기느라 징하게 독하게 살아서 눈물이 나 그렇게 눈안개 서리게 아프고 아파     ♧ 정오의 거리    능소화, 흐드러지고 막이 내리.. 2024. 7. 25.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4) ♧ 방하放下 - 남택성    사라진 성주사 넓은 절터에 하얗게 내린 망초꽃   이 많은 눈은 어디서 오나   낭혜화상탑비, 오층석탑, 삼층석탑을 지나 눈과 코와 입이 뭉개진 석불입상 앞에 선다 닫힌 문 앞에서 거처를 묻는 천 년의 적막 무현금을 타는데   절터를 지키고 선 불상의 마음을 읽느라 나는 오래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데   지워도 지워도 돋아나는 생각은 어디서 오나   절 없는 절 새하얗게 흐드러진 칠월의 눈 망초꽃 위로 날아오르며 금강경을 읽는 나비   이 밝은, 반야의 눈은 어디서 오나     ♧ 보면 보이는 그림 - 도경회    모내기 끝난 무논에 뜬 모를 심던 모가지 깃대처럼 높은 백학 한 마리   선학으로 날아올라 돗바늘로 하늘 자락 시치며 .. 2024. 7. 24.
'혜향문학' 2024년 상반기호의 시(2) [문인초대석]   ♧ 봄날 가듯 – 조선회     1910년 7월 2일생 이경생 씨가 나들이 나선다   가난한 광산 김씨 종손 집에 시집와서 남의 집 품팔이만 하던 여자 자식들 배불리 먹이는 게 평생소원이던 여자 훌쩍 일본으로 밀항 간 아들 그리워하다 끝내 못 보고 피 토하며 눈 감은 여자   제비꽃 총총 따스하게 핀 봄날 묘적계도 없는 남루한 집을 떠나 영정 속의 자신보다 더 늙어버린 칠순의 자식을 따라 납골당이 있는 천왕사로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노래 가사처럼 봄바람이 젖은 눈시울 말리는 사이 숲은 눈물을 찍으며 초록으로 넘어간다     ♧ 미선나무 - 이승은    -절두산순교지    여리고 하안 손등 향기 짙은 눈썹위에   잃은 봄을 환불 받듯 네 그늘이 다가.. 2024.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