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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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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의 시(11) ♧ 대흥사 연리근 앞에서     -도민문학학교 기행    세상에 인연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모두 인연의 그늘에서 살아간다   부모님의 그늘에서 남편의 그늘에서 자식의 그늘에서 이웃의 그늘에서 나라의 그늘에서 하늘의 그늘에서   대흥사 연리근 느티나무 오백여 년 세월 동안 스치고 지나간 많은 인연같이 하늘의 뿌리에 손끝을 대어본다 아무 시름없이 하늘의 그늘 붙잡고 살아가고 싶다     ♧ 위태로운 산담     - 제주문화역사 나들이   아라동 언덕에 고한조와 전주 이씨 합묘 찾아 길 떠났다 가시덤불 우거진 모기 벌레 기승을 부리는 팔월 중순왕성한 여름 수풀 해치며 긁히고 찔리고 물리며 갑인년 대흉년에 쌀 삼백 석을 나라에 헌납하고 서당을 설립하여 유학제생들에게 학문을 권장했던 의로운 대정현.. 2024. 7. 7.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의 시조(6) [유고 동시조집]    ♧ 이모와 보름달   그믐인지 초승인지 이모 눈썹 같던 달이 오늘은 한가위라 몰래 많이 먹었나 봐 감나무 가지에 걸린 저 달도 확 쪘네요     ♧ 그리운 할머니   오늘은 온 가족이 제사 준비 하는데 온종일 태풍 소식 한라산이 들썩들썩 바다도 와장창 깨진 할머니 거울 같아요     ♧ 부엉이 방귀   참나무의 포자가 소나무를 만나면 부엉부엉 부엉이 방귀를 뀐다지요 모양도 부엉이 같은 혹 방귀를 뀐다지요   부엉이가 방귀 뀌면 가을이 온다지요 받아라 이 혹 방귀 늦여름 늦더위야 그 소리 깜짝 놀라서 밤송이도 터져요     ♧ 남극노인성   지구의 밤하늘에 두 번째로 밝은 별이 서귀포 밤하늘에 반딧불이 같아요 바람만 살짝 불어도 꺼질 듯 깜빡여요   여름철 전갈자리 슬금슬.. 2024. 7. 6.
장영춘 시집 '달그락, 봄'의 시조(3) ♧ 나바론 절벽*   어쩌랴, 절벽 아래 저 파도를 어쩌랴방향키 놓쳐버려 떠밀리고 떠밀려온추자도 하늘길 따라소금꽃이 피었다   나바론의 요새에 숨어든 병사들처럼오늘 밤 태풍 전야 고요를 방심 마라구절초 봉오리 쓸며구구절절 되새기는   어쩌다 사는 일이 벼랑 끝에 서 있는 날누군가 뭍으로 와 자일 하나 건네면등 시린 저 꽃들조차바람이고 싶겠다   ---* 추자도에 있는 절벽이 나바론 요새를 닮았다 해서 지은 이름.     ♧ 자작나무 소묘   누구의 눈빛으로 위로되는 날 있지 어제를 묻고 온 자작나무 숲속에 묵묵히 바람 맞서며 속살 한 겹 벗겨내는   아무리 힘들어도 구부리진 않았어 하늘이 내어준 그 높이를 따라갔을 뿐 지나는 길손에게도 손 내민 적 없었네   한겨울 꼿꼿함에 너를 보며 견뎠어사계절 아.. 2024. 7. 5.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6) ♧ 시작노트 2   시도 그렇다 현실의 내가 아등바등 일에 치여 모두 벗어던지고 싶을 때, 시가 나를 항해 손짓한다 나는 그 손을 한두 번은 뿌리친다 세상엔 복잡한 시보다 더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들이 많다고 하지만 그것들을 느끼고 얼마의 시간을 보내고 온 나는 그 즐거운 것들이 이끄는 곳에서 내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어떤 내 안의 무언가를 찾지 못하고 허우적대기만 했을 뿐이라는 걸시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온 정성을 들이며 나를 달구며 두들겨야 한다 그래야만 시가 단단해진다       ♧ 썩은 시가 되고 싶다   간간이 다가들던 풋 생각 날로 익어 그 생각 썩고 썩어 내 시가 발효되면멍들어 아린 자국들 봄 햇살에 말리자   그러다 누군가의 지릿한 오줌 되고 그러다 누군가의 물컹한 똥.. 2024. 7. 4.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의 시(6) ♧ 살레칭 밧   원당봉 자락에 살레 살레 층이 있어 살레칭이라 했을까   둘레길 지나다 보니 원당사 절 아직도 가부좌 틀고 있네   어머니 일 가시고 나면 아버지 등에 동생이 있고 아버지 손에 내가 있을 때 울담 돌아 살레칭으로 참외 도둑 내모시던 아슴아슴 아리던 자리   아버지 상여 원당사 잠시 돌아 설기떡 층층 설상에 올리던공양주 아직 함께인 듯 눈에 아림은   궹이진 손 밧 늘리며 일용할 양식 조 보리 감저 심던 살레칭 밧 ᄎᆞᆷ웨 맛도 참 좋았는데     ♧ 연리지 사랑    아가야   얼마나 아팠을까 울음으로 경기하며 아프다고 할 때 아무것도 몰라서가 아닌 데 알아듣지 못했을까 철딱서니 없는 것들 부모의 무모한 행동으로 생, 내려놓으려 할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연리지 되어 우.. 2024. 7. 3.
강동완 시집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11) ♧ 사랑을 장독대에 담고   오후의 햇살 속에서 다듬다듬 다듬거리는 다듬이 소리 들릴 때 그 다듬이 소리가 슬픈 눈꺼풀을 들어 올릴 때 오지 않을 것 같던 사랑이 요고 아낙네가 흘린 씨앗에서도 꽃이 피어났다   사랑을 담아두는 건 쉬운 일이지만 장독대의 푹 익은 고추장이나 된장처럼 매콤하거나 구수하게 익히기는 어려워   가끔 가슴 졸이며 내 마음의 장독대를 열고 새끼손가락 푹 찍어 맛을 보지만 비 온 뒤 내 사랑은 쓰다 햇살이 뼈마디를 부러뜨리면 뚝뚝뚝 비가 내린다 내 마음의 장독대에도 깊숙이 비가 내린다 어머니는 급히 뒤뜰에 열어진 장독대를 닫고 큼직한 널빤지와 돌을 얹혀 놓는다 난 장독대를 닫는 일을 지주 잊어버렸다 무엇보다 널빤지와 돌이 나에겐 너무 버거웠다   장독대는 바람이 잘 드는 곳에.. 2024.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