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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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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성 시조집 '메께라'의 시조(11) ♧ 다섯 그루 팽나무   한날한시 온 마을이 제지내는 일월 북촌 비손하듯 씻김하듯 당팟당을 찾아간다 팽나무 다섯 그루가 신당 차린 작은 언덕   총소리 비명소리 나이테에 새긴 나무 화산도 불의 시간 피돌기로 재워가며 검은 돌 흉터 자국도 초록으로 감싸왔다   납작 엎던 서우봉에 붉덩물이 번질 때면 옹이마다 되살아나는 그 겨울의 환상통 숨죽인 흐느낌 같은 물소리도 들린다   봄 되면 일어서라 일어나서 증언하라   바다를 건넌 바람 귀엣말로 속삭일 때 규화석 껍질을 벗고 우듬지를 세운다     ♧ 엉또폭포   핏빛 동백 뚝뚝 지면 가슴은 늘 타들었다   눈물이 없어 눈물이 없어 더 쏟아낼 눈물이 없어   겉마른 사월 계곡에 몰래 뱉는 속울음   물허벅에 물이 비면 집도 절도 망한다고   그예.. 2024. 7. 1.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6) ♧ ‘혀로 산’ 삶 – 임보   『혀로 쓴 시』는 김하일金夏日 시인의 시집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 경북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13세에 아버지 따라 일본에 건너간 하일은 주경야독하며 근근이 버티며 지냈다 그러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문둥병에 걸려 즉시 요양원으로 강제 격리되었다   시력을 잃게 되자 점자를 익혔지만 손가락마저 기능을 잃어 혀로 점자를 읽었다 그리고 안타까운 그의 삶을 시에 담았다   그는 그렇게 혀로 80년을 살다 한 권의 시집을 남겨놓고 2023년 아흔여섯 해의 어둡고 고단한 한평생의 삶을 마감했다.     ♧ 봄에 핀 얼음꽃 - 여연   뽀드득뽀드득, 잠든 네가 틀니 가는 소리 이를 갈 때마다 이에서 눈가루가 날렸다 깊은 잠으로 들어간 너는 아직 한겨울 벚꽃이 피어도 못 .. 2024. 6. 30.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의 시(10) ♧ 하논 마르     -제주문화역사 나들이    병풍을 두른 듯바람도 비껴가는 포근한 옛길 논둑길 따라 논물이 재잘대는 아늑한 곳에 까까머리 이병 같은 벼 빈자리마다 파르스름하게 싹이 돋아 상큼하다   추수가 끝난 하논 마르에서는 새소리와 물소리에 흘러가는 구름 한 토막 뚝 잘라놓고 가을을 끓이고 있다   큼지막한 하논 대접에 가을 한 국자 퍼 담아서 베지근한 가을을 건네고 있다     ♧ 적송 위의 나부상     -제주작가 문학기행   전등사 성문에 들어서면 적송 몇 그루 성문 옆에서 풍경으로 스며드는 토성을 지키고 있다 멀찍이 나무 그늘에 앉아 적송을 바라보노라면 가지 끝에 여인이 보인다 도편수와 사랑에 빠졌던 주모가 돈에 눈이 멀어 도망갔다더니 언제 돌아왔는지 적송 위에 걸터앉아 솔잎 사이로 .. 2024. 6. 29.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의 시조(5) ♧ 섶섬    Ⅰ 성산에서 놓친 해를 서귀포서 다시 본다    내 마음 칠십리는 언제나 빈 포구인데    한 줄기 뱃길 끝에서 표류하는 섬이여    Ⅱ  보목동 산 1번지 섶섬 해돋이야    수천 년 늙은 바위에 홍귤 꽃도 피워내고    수난의 바다 곁에서 파초일엽 키웠지    Ⅲ 이제는 지워야 하리 이마에 걸린 수평선    매달 음력 초사흘과 여드렛날은 용이 되게 해달라고 빌던 구렁이 용왕의 야광주를 찾지 못해 백 년을 바닷속만 헤매다 죽었다지만,    아침놀 번진 칠십리 전설보다 슬퍼라    ♧ 비양도(飛陽島)   바다는 내 생활 유배지   아침 6시출어하면우도 끝에가시처럼 돋아 있는 불빛들   썰물 때는 한 줄기 길사발꽃이나 피우다가밀물 녘에야 비로소 섬이 되는 비양도   바다의 눈발이 더하면새미야.. 2024. 6. 28.
장영춘 시집 '달그락, 봄'의 시(2) ♧ 해후     너를 보낸 시간 앞에 늘 목이 마르다허기진 기억들이 봄이면 꿈틀꿈틀하늘로 올려본 날이몇 날 며칠이던가   그리움의 끝자리엔 회색빛만 감돌다혹독한 겨울 지나 붓끝을 세우다 말고산목련 꽃 문을 열며 그렇게 너는 왔다   사나흘 마주 보다, 막막하고 막막한 채아무 말 못하고 선 네 몸짓을 보았다서로의 눈빛만으로도뭉클하고 뭉클해진       ♧ 산 목련     겨울의 꽃눈을 달고 그녀는 내게로 왔다   오랜 불임의 시간 탯줄을 자르고   이제 막 배냇저고리 가지 끝에 걸렸다     ♧ 그 여름     있는 듯 없는 듯이 없이 살자 그랬지   세상 밖 소리조차 자물쇠를 채워놓고   뜨겁게 달궈진 방 내가 나를 가둔다   그렇게 사흘 나흘, 그 여름 다가도록   꽃 대궁만 올리다 상사화 꽃 진.. 2024. 6. 27.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5) ♧ 초록 – 김은옥   육덕 좋은 저 햇살 나무마다 꽃마다 마구마구 몸 치대더니 봄날을 초록으로 가득 채워 놓았군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어느 밤 별똥별 하나가 나를 관통해 왔지 예고도 없이 내 몸에 깊은 구멍을 만들어 놓더군 불의 제단에 던져진 느낌이었지   마지막이듯 거대한 초록을 망막에 비취 보는데 별똥별 앞 다투어 꽃피우는데 초록도 구멍 같이 타오르는 어둠이더군       ♧ 평형수 - 김정원   배가 무거운 짐을 싣고 높은 물살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일 왼쪽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일   목적지를 향한 속도와 방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엎어지지 않는 일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려도, 기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울려도, 중심을 잃지 않고 다시 똑바로 서.. 2024.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