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전체 글366

'제주작가' 2024년 여름호의 시(1) ♧ 아버지의 앨범 – 강덕환   구순이 다된 아버지가 지나온 세월을 길어 올리던 추억을 가져가라 한다, 그 추억 속에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의 궁핍 4․3과 전쟁, 분단의 혼란기 코흘리개 모습이나 학창 시절 친구와의 우정, 어머니와의 연애 예비군, 새마을, 민방위복을 입고 조국 근대화에 앞장서던 시절 사진 한 장쯤 있을 법한데   없다, 고작해야 한국전쟁 끝나고 입대했던 군대에서의 군복차림 모습이 제일 젊다 거실 벽 괘종시계 곁에 걸기도 했던 자식이랑 손자들이 가득한 가족사진과 향교 훈장(訓長) 임명식 사진을 애지중지하였지만 이젠 침침한 눈, 먹먹한 귀처럼 부착식 비닐이 접착력을 잃어 너덜거리는그 추억이 담긴 앨범을 가져가라 했을 때   요즘 세상에 사진을 앨범에 보관하지 않는다고 스캔으로 떠서 파일로.. 2024. 7. 13.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7) ♧ 시작노트 4   절부암 앞에 서면 그 모든 것들이 시간의 풍화를 견디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삶의 번민과 슬픔을 바다에 적당히 절여둔 채 오롯이 나를 항하고 있었다 더하고 덜한 것 없는 본모습을 깨우며 각자의 리듬으로 끊임없이 풍화를 견뎌내면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무너져 내리지 않기 위해     ♧ 어마 넉들라*      놀라서 넋 났구나   우리 아기 어마 넉들라     일상은 원시부족 언어처럼 끄덕이거나 가로젓는 몸짓으로도 불편함은 없었다   은빛 갈치처럼 싱싱하던 말들이 절부암을 보이며 오래도록 수상되어 있었다 푸른 혀를 잘라 어둠에 묻던 날 나는 말을 잃었다 망각은 기역 세포를 일깨우며 바다에 서 있었다 어마 넉들라 어마 넉들라 주문이 분주한 중에도 용수리 포구에는 배가 드나들더라 그.. 2024. 7. 12.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의 시(7) ♧ 열매     -딸의 결혼을 축하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로 맺으며   순백의 드레스처럼 맑은 영혼의 날이 영원히 지속하길 바라는 엄마의 염원 담아 너를 보낸다   사랑하는 딸아 언제나 맑고 밝게 가시받길 혹은 자갈길이 온다 해도 그 여정, 지혜롭게 해쳐나가는 그런 내 딸이 되어라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하며 사랑하는 아내로 사랑하는 남편으로다정하게 따뜻하게 다가서는 그런 부부가 되기를 그런 부모가 되기를 그런 자식이 되기를   축복이 함께하는 사랑하는 딸아…     ♧ 빗소리   마음의 풍금을 연다 노래비 흐르는 언덕길 따라 두 손 꼬오옥 잡고 걸어가는 엄마와 아들 음률 타고 들려오는 속삭임   엄마 나는 비 오는 날이 좋더라 왜빗소리가 그냥 좋아서요 어깨에 톡톡 떨어지는 이 소리가.. 2024. 7. 11.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1)와 해바라기 ♧ 시집 증정 - 홍해리     1969년에 나온 내 첫 시집 『투망도投網圖』 정가 320원이었다 요즘 보니 경매에 나온 그 책 경매가가 30만 원이다   책을 소개한 글을 보면 ‘증정본’이라고 돼 있는데 내가 시집을 드린 분이 바로 은사 김시인 교수님 그사이 50년 넘게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이제 경매 사이트에까지 올라오게 되었나 보다   80년대 초 어느 해 새 시집이 나와 동료 교사에게 증정을 했더니 학기말에 좌석이 바뀌어 짐을 옮겨야 하는데 내 책이 휴지통에 처박혀 있었다   창피해서 몰래 꺼내 보니, 바로 고릴라란 별명의 수학선생 고高가 그년이었다 돼지에게 던져 줄 걸 참 내가 눈이 삐었구나 했지.     ♧ 목련 – 서병학   가지마다 알을 품고 부화시키는 듯 봉우리마다 새하얀 부리를 .. 2024. 7. 10.
강동완 시집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완) ♧ 노을의 눈물   노을 속으로 외눈박이 거인의 따뜻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노을 속 기타를 치는 황금빛 수염을 가진 마법사들이 벌레 먹은 구름 위에 살고 있다 마법사의 모자 속으로 뜨거운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난쟁이들은 뗏목을 타고 노을의 강으로 흘러들어 갔다 난쟁이들은 깊은 잠을 자기 위해 간혹 햇살로 모습을 바꿨다 웃을 다 벗은 아이들이 맨몸으로 노을 속으로 풍덩풍덩 뛰어 들었다 크레파스를 들고 노을 속에서 신비스런 산동네와 불빛 기득한 해바라기 꽃밭을 그렸다 잠에서 깬 난쟁이들이 노을 속에서 몸을 씻고 허겁지겁 아득한 사과를 먹었다 죽은 새들이 박제되어 앉은 우거진 숲 간혹 박제된 새가 살아서 구름 속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노을은 거인의 붉은 혓바닥 같았다 어린 사슴 한 마리 노을의 식탁 위에 자.. 2024. 7. 9.
임채성 시집 '메께라'의 시조(12) ♧ 무명천할머니길*   피를 쏟는 절규에도 하늘은 늘 침묵했다   검은 돌담 넘나드는 무심한 바람 앞에 얼룩진 무명천 같은 시간이 멈춘 골목   파도치는 새벽마다 귀청을 찢는 총성   욱신대는 그날의 기억 빈 턱에 도질 때면 방울져 흐르는 침을 눈물처럼 떨구었다   입을 막고 산다는 건 제 상처를 감추는 일   소스라치게 꿩이 우는 봄 산을 뒤로한 채 때 절은 붕대 하나로 반세기를 버티는 일   골목 어귀 이정표가 재우치는 겨운 걸음   상처 많은 백년초에 까치놀이 내릴 동안 바다는 낮술에 취해 피몸살을 앓고 있다   ---*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 진아영 할머니 집터로 이어진 마을 안길.     ♧ 백조일손지묘*   남북전쟁 새된 총성 섬에 미처 닿기도 전   군용트럭 짐칸에서 유언장을.. 2024.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