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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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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신 시집 '연서戀書'의 시(8) ♧ 바다, 너에게로    해안 길 걷다 속울음 터질 때 바다, 네게로 달린다   바다는 소리를 만들고 나는 가사를 만들고   그 속절 음 따라 몸부림치는     ♧ 이 사람아    그냥 고맙고 대견했었지   곡예사의 사랑처럼 애리애리하게 태어나 아파서 힘들어서 그랬고 힘이 없어 몸이 울고 눈물이 말라 마음이 아리도록 펑펑 그랬지   새끼 놓칠까 봐 아파 울고 어미 잃을까 봐 속울음 삼기며   칠성님께 부처님께 조왕신에 문전신에 매달리며 애면글면 그랬지 애간장 타는 가습 핏물 되어 녹는 이 마음 누가 알까 힘든 고비 넘기느라 징하게 독하게 살아서 눈물이 나 그렇게 눈안개 서리게 아프고 아파     ♧ 정오의 거리    능소화, 흐드러지고 막이 내리.. 2024. 7. 25.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4) ♧ 방하放下 - 남택성    사라진 성주사 넓은 절터에 하얗게 내린 망초꽃   이 많은 눈은 어디서 오나   낭혜화상탑비, 오층석탑, 삼층석탑을 지나 눈과 코와 입이 뭉개진 석불입상 앞에 선다 닫힌 문 앞에서 거처를 묻는 천 년의 적막 무현금을 타는데   절터를 지키고 선 불상의 마음을 읽느라 나는 오래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데   지워도 지워도 돋아나는 생각은 어디서 오나   절 없는 절 새하얗게 흐드러진 칠월의 눈 망초꽃 위로 날아오르며 금강경을 읽는 나비   이 밝은, 반야의 눈은 어디서 오나     ♧ 보면 보이는 그림 - 도경회    모내기 끝난 무논에 뜬 모를 심던 모가지 깃대처럼 높은 백학 한 마리   선학으로 날아올라 돗바늘로 하늘 자락 시치며 .. 2024. 7. 24.
'혜향문학' 2024년 상반기호의 시(2) [문인초대석]   ♧ 봄날 가듯 – 조선회     1910년 7월 2일생 이경생 씨가 나들이 나선다   가난한 광산 김씨 종손 집에 시집와서 남의 집 품팔이만 하던 여자 자식들 배불리 먹이는 게 평생소원이던 여자 훌쩍 일본으로 밀항 간 아들 그리워하다 끝내 못 보고 피 토하며 눈 감은 여자   제비꽃 총총 따스하게 핀 봄날 묘적계도 없는 남루한 집을 떠나 영정 속의 자신보다 더 늙어버린 칠순의 자식을 따라 납골당이 있는 천왕사로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노래 가사처럼 봄바람이 젖은 눈시울 말리는 사이 숲은 눈물을 찍으며 초록으로 넘어간다     ♧ 미선나무 - 이승은    -절두산순교지    여리고 하안 손등 향기 짙은 눈썹위에   잃은 봄을 환불 받듯 네 그늘이 다가.. 2024. 7. 23.
계간 '제주작가' 여름호의 시(2) ♧ 송령이골에서 양용찬 - 김규중    그는 4․3 전사(戰士)의 진정한 후예다 그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후반 4․3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물결이 일어나고 학생들은 4․3을 ‘死․삶’이라고 표현하며 항쟁의 엄혹함을 느끼려 했다   死와 삶을, 우리의 살과 뼈를 갉아먹는 개발특별법을* 백척간두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람이 그다   당시에 송령이골 존재가 알려졌으면 그는 자기 몸에 불사르기 전날 아마 송령이골을 찾아 갔을 것이다 타일공 일을 마치고 작업복으로 쑥부쟁이 한 송이 낮은 무덤 앞에 놓으며 묵상에 잠겼을 것이다   일기장에 써놓은 자신의 시 한 구절 철쭉꽃 입에 물고 쓰러져간 4․3 전사(戰士)들이 부활하는 지주 민주 통일의 꽃** 을 조용히 읊조렸을 그다 .. 2024. 7. 22.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 발간 ♧ 시인의 말    네가 어디에 있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먼 바다 그 너머의 빛을 볼 때마다 눈이 부셨다.   저 파랑을 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2024년 7월   김윤숙     ♧ 발견    내 안의 빈 틈새 다시 그린 밑그림   첫새벽 잎새 하나 칠하고 덧칠했다   바다가 삐져나오나 눈곱이 자꾸 낀다     ♧ 조용한 바다*    심연을 흔드는 코발트 빛 바다 앞에 한순간 휩쓸리듯 일어서는 뭉게구름   폭풍은 내 안의 바다 배 주위가 고요하네   가만히 돌이키면 무모한 날들 흘러 힘겨워 다 내려놓은 수상한 돛마저   여행지 기억을 새기며 파고드는 모래펄   어서 돌아오라, 간절한 손짓에도 대양을 향한 열망 쓰러진 돛을 세워   .. 2024. 7. 21.
장영춘 시집 '달그락, 봄'의 시(4) ♧ 11월의 숲     어느새 텅 비워낸 어리목 산정길엔치열했던 시간을 하나둘 지워가며휑하니 남 밑둥치빗장 푼 햇살 한 줌   ‘낙엽은 떨어지는 게 아니라 내려놓는 거다’바람 속에 스쳐가는 문구 하나 떠 올리며예전에 굳게 닫았던,움켜쥔 손 펴 보네     ♧ 빙벽氷壁    -왕이메 고드름   하늬바람 쌩쌩 부는 들판에 나 앉아발가락이 얼도록 오름 한 바퀴 돌아도구석진 담벼락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온기라곤 하나 없는 얼어붙은 세상 앞에벼랑 끝 거꾸로 선 엘사*의 눈물 같은언젠가 얼음 방에도 봄은 꼭 오리라는   ---*엘사 : 에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의 여 주인공.       ♧ 길 없는 길 위에서   가끔 사는 일 또한 헷갈릴 때 있다   사랑도 미움도 흔들리던 내 발자국도   어쩌면 걸어온 길.. 2024.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