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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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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꽃의 노래(1) ♧ 용담꽃 - 홍해리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돌아와 서성이는 텅 빈 안마당에스산히 마른 가슴만 홀로 서걱이는데소리치며 달리던 초록빛 바람하며이제와 불꽃 육신 스스로 태우는 산천서리하늘 찬바람에 기러기 떠도입 꼭꼭 다물고 떠나버린 사람아달빛에 젖은 몸이 허기가 져서너울너울 천지간에 흐늑이는데잔칫집 불빛처럼 화안히 피어‘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하리라’*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   ---*용담의 꽃말     ♧ 한라돌쩌귀 – 김윤숙    삼각봉   능선에서도   바람의 말   귀 안 기울던   보랏빛 투구모자   눈물 그렁 사내여   한번쯤   저잣거리의   가을볕에 내리고픈     ♧ 수크령 - 조한일   수렁에서 날 건져준그 사람을 위해서   들녘에 스크럼 짜고하늘 보고 누웠.. 2024. 10. 5.
계간 '제주작가' 여름호의 시(9) ♧ 벚꽃 지는 날 – 오광석   벚꽃잎이 떨어지는 긴 다시 봄이 지는 거 돌아온 사월이 저물어 가는 거 떨어지는 꽃잎들을 맞으며 뛰노는 아이들이 좀 더 자라는 거 바라보는 눈가에 주름이 자라는 거   벚꽃이 피고 질 때마다 꿈도 잠시 피었다 저물어 간다 떨어질 때마다 꿈들이 떨어져 나가는 사월 아이들의 맑은 얼굴에 시간의 그늘이 조금씩 드리워진다   나무를 흔들어 꽃잎을 떨어뜨리는 아이들을 막아선다 아직은 꽃이 지면 안 돼 설익은 열매가 나고 나면 잊혀가는 사월이 되면 안 돼 사월이 지나고 나면 훌쩍훌쩍 커버린 키에 쪼그라드는 꿈들이 달려 잊혀가는 시절로 남으면 안 돼   호린 하늘에서 봄비가 내린다 떨어지는 꽃잎들이 씻겨 내려간다 비를 피하려 집으로 뛰어가는.. 2024. 10. 4.
조직형 시집 '천 개의 질문'의 시(6) ♧ 북경오리는 북경에서 오지 않는다    북쪽 하늘이 덩 비었다   어디로 다 날아갔을까 여기 한 마리, 두 마리가 날아와 앉았는데   무리에서 떨어지면 찾을까 그냥 버려지는 것일까 의문부호처럼 접시에 엎드렸다 속이 타 간이 오그라들고 껍질까지 바싹 굽혔다   운명은 사육되고 날개는 퇴화하여 살진 새 고개를 들면 환한 북쪽 하늘은 그저 북쪽만 가리키는 방향이었다   그래서 고향이 밀리 있다는 걸 알았다 거기서 태어나지 않아도 고향   태생이 어딘지 몰라도 모두 북경오리 주둥이가 붉은지 노란지  지방색이 드러날 털 색깔이 무엇이었는지 북경오리는 북경에서 오지 않는다   이름을 포장한 요리들   가장 먼저 혀에 닿는, 그 맛이 원조로 기억된다     ♧ 나도풍란.. 2024. 10. 3.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의 시(8) ♧ 세화리에 가다      -금붕사     아주 오래전 길 따라 잠시 스쳐 지나던 자리, 상상도 못 했던 사연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간이다 말로만 듣던 4․3의 흔적은 쫓는 자와 쫓기던 자에 이어 숨겨줬다는 어거지로 질질 끌려가 수십 발 총탄에 생을 마감해야 했던 스님, 내 생전 피부로 느껴보지 못했던 세월, 그 환영에 끌리듯 생생하게 귀로 눈으로 영접하는 시간이다 현재, 주지 스님 구술에 의하면 이성봉 스님의 이모 뒤를 이어 조카인 자신이 지켜나가는 ‘금붕사’ 절, 그때 총살과 화재로 남은 것은 역사를 지켜내는 ‘오십 나한’, 뜻은 잘 모르나 그 보존에 스님 행보에 경의를 표하며, 이성봉 스님 뻥뻥 뚫린 수십 발 흔적에, 무모하게 영계로 입적하신 스님 몸에 행여 지령이 들까 봐 하나하나 구명 메워 합장.. 2024. 10. 2.
장영춘 시집 '달그락, 봄'의 시(10) ♧ 어머니의 방*    곰삭은 시간 너머 건듯건듯 바람 불면 그곳에선 늘 마른 풀 냄새 풍겨온다 태초의 요람을 흔드는 웡이자랑 웡이자랑   아직도 그 소리가 환청으로 되살아나   풀죽 한 끼 먹인다며 주걱 휘휘 젓다가 솥에서 건져낸 모정 들판 위에 누웠다   이별은 예고 없이, 날아오는 화살처럼 명하니 화석이 된 오백 장군 아들들이 철쭉 빛 하늘 한 자락 떠받들고 있는 방   --- * 어머니의 방: 제주돌문화공원에 있는 설문대할망을 기리는 방.     ♧ 산방산, 그 자리    누가 저 산중에 돌의자를 빚었는가 한라산 봉우리로 만들어진 산방산엔   언제나 목젖이 부은 까치들이 살고 있지   메아리로 가득 찬 그 길 위에 마주 서면 해종일 기다려도 너는 다시 오.. 2024. 10. 1.
월간 '우리詩' 9월호의 시(6) ♧ 위로 – 임보    아직 시비도 문학관도 없고 세울 땅도 세워 줄 사람도 없다고 너무 안타까워 마시라   만일 그대가 좋은 작품만 낳는다면 이 세상 사람들의 가슴이 그대 시의 비각이 될 것이고   이 세상이 곧 그대의 문학관이 될 것이다     ♧ 장맛비 – 정봉기    갑진년의 6, 7월 그날이 그날인데 자연의 시계는 얼추 맞아 간다 기후 온난화, 기상 이변이라지만 탈이 나면 난 대로 일, 월, 년은 흐르고 있다. 의지의 날을 세우고 격정의 말을 내 세운들 잡아 둘 수 없다. 숲을 타고 넘는 바람을 무슨 수로 돌릴 수 있겠는가. 힘겨루기는 상처만 덧내 공멸로 갈까, 걱정이다. 에서 멈추었으면 한다. 통증에 아파하는 장맛비, 거칠어지는 모양새다.    .. 2024.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