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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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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제주작가' 봄호의 시조(2) ♧ 초사흘 달 - 이애자    -소꿉동무 순화야     한입만 한입만 한 입 남은 가생이   굿판 끝난 돌레떡 줄듯 말듯 하다가   뒤돌아 침 발라 놓고 빙긋 웃던 신방 똘     ♧ 봄까치꽃 - 장영춘     내 키가 너무 작아 놓치는 일 허다하다   보랏빛 염원 같은 오월의 그 약속도   야속한 하늘만 보다   내 안에 갇혀버린 봄     ♧ 꽈배기 - 조한일     100원짜리 동전 대신 빨대로 뺀 쇼핑카트   마트 근무 2년 반에 그거 하나 배웠군   비비 꼰 마누라의 한마디 확 당기는 꽈배기     ♧ 입춘 무렵 - 한희정     아직은 모르겠어 그냥 종일 초조해   아린 듯 가려운 듯 이 밤 지나면 알까 몰라   아! 들려 물소리가 들려   귀가 촉촉 젖어와… .. 2024. 5. 26.
월간 '우리詩' 5월호의 시(4) ♧ 거친 파도가 유능한 뱃사공을 만든다* - 이화인     제비가 집을 짓는데 천오백 번 이상 흙을 물어다 짓고   매미는 일주일을 살려고 어둡고 습한 곳에서 칠 년을 견뎌 낸다   아기가 삼천 번 이상 엉덩방아 찧고서야 일어설 수 있고   피겨 선수는 사천 번 나둥그러지고 제 몸을 꽃으로 피운다   소금 한줌 얻으려면 바닷물 아흔아홉 바가지를 햇볕에 다려 말리고   쌀 한 톨을 얻기 위하여 농부는 여든여덟 번 손길을 주어야 한다.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에서 인용     ♧ 슬픈 자화상 – 임영희  연식이 오래된 나는 건망증이라는 탈을 쓰고 살지 이끼 낀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덕지덕지 묻어 있지 느슨하게 풀린 나사가 낡고 녹슬어 수시로 간헐적으로 작동이 멈추거나 삐걱거리지 남은.. 2024. 5. 25.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의 시(7) ♧ 관   -극단 가람 ‘가로묘지주식회사’ 연극을 보고   강남에서 북으로 북으로 원룸에서 고시텔로 위로 위로 올라가다 마지막 당도한곳 관   잠자는 기능만이 가능한 이곳 사람보다 돈을 중시 여기는 가로와 돈보다 사람을 중시 여기는 세로 남매의 묘지주식회사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 약자를 횡포할 수밖에 없었던 악순환   임대료가 밀려 쫓겨나고 거리로 내몰리는가난한 세입자들 죽어라고 일을 해도 의식주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죽어라고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는 결국 내 몸 하나 누울 관마저 얻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리는 세입자들     ♧ 그림의 떡    -독립 영화 ‘복지식당’을 보고     사고로 장애인이 된 청년 재기는 거동조차 힘든 중증인데도 장애인 등급은 경.. 2024. 5. 24.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의 시조(9) ♧ 구럼비 해안에서     이제는 벨과 자리* 오월에도 뵈지 않는다 만선을 꿈꾸던 배는 어디론가 다 떠나고 파도는 테트라포드에 발이 묶여 잠들었다   썰물이 질 때마다 환상통을 앓는 바다 별빛 달빛 쫓아버린 탐조등 불빛 앞에 난만히 노을에 취한 갈매기도 날지 않고   아직껏 떠나지 못한 어리보기 범섬 향해 너럭바위 추념하듯 띄우는 테우 한 척 강정천 굽은 어깨가 레이더에 잡혀 떤다   ---*멸치와 자리돔     ♧ 목시물굴*의 별    아버지는 집에 남은 돼지만 생각하셨다   삼촌들은 캐지 못한 고구마가 걱정이었다   동네가 다 모였다며 하르방은 웃으셨다   거적을 깐 바닥에선 겨울이 스멀거렸다   서로 맞댄 등마루가 온돌처럼 따스했다   어둠 속 초롱한 눈빛, 별을 닮아 있었다   .. 2024. 5. 23.
월간 '우리詩' 5월호의 시(3) ♧ 요다하다 – 이윤진     풍요롭고 많다 국어사전을 펼칠 때마다 생소한 단어들이 부지기수다 아름다운 언어의 맥은 부드러운 협곡을 만들고 생이 익어가는 것처럼 발견의 환희에 초로의 눈빛이 반짝인다 낱말의 협곡에서 모호함이 생길지라도 이해하고 진중해아 하는 것들은 그득하다 내가 사는 세상도 그러하다      ♧ 욕망을 태우다 - 이중동   근원을 알 수 없는 아궁이 하나가 내 몸속에 터를 잡고 있어요 커다란 주둥이를 가진 욕망의 아궁이 너무 뜨거워서 손을 댈 수가 없어요 날마다 아궁이를 품고 잠을 자고 출근을 하죠   나는 세상 모든 욕망을 위해 쉬지 않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요 당신의 피를 끓게 해 줄까요? 핏발선 두 눈 부릅뜨고 보세요 무지개 같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어요   그대는 나의 피를 .. 2024. 5. 22.
계간 '제주작가' 봄호의 시조(1) ♧ 아가미 호흡으로 - 김연미   부재중 전화가 떠도 너는 연락이 없었지 기억의 한 모퉁이 섬이 점점 작아지고 꽃 피고 눈이 내려도 멈춘 시간이었지   스팸메일 안부 같은 이름으로 남았을까 가장 높이 가장 멀리 가야 할 길은 멀고 이쯤서 되돌아갈까 너의 바다 속으로   안개 낀 교래 곶자왈 핑계처럼 길을 잃고 장맛비 그친 숲속 코끝까지 물이 차면 잊었던 아가미 호흡이 다시 편안해질까   골고사리 표주박이끼 수정이 된 바위수국 반가움과 낯섦이 갈등처럼 엉키는 사이 빙그레 미소를 짓는 네가 거기 있었다     ♧ 니들의 판결문 – 김영란      단 한 명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 했지     제주사람 300명 7년형 선고 받고 형무소에서 손꼽던 만기출소 꿈은 가고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에 누웠지 그 .. 2024.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