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17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1)와 해바라기 ♧ 시집 증정 - 홍해리 1969년에 나온 내 첫 시집 『투망도投網圖』 정가 320원이었다 요즘 보니 경매에 나온 그 책 경매가가 30만 원이다 책을 소개한 글을 보면 ‘증정본’이라고 돼 있는데 내가 시집을 드린 분이 바로 은사 김시인 교수님 그사이 50년 넘게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이제 경매 사이트에까지 올라오게 되었나 보다 80년대 초 어느 해 새 시집이 나와 동료 교사에게 증정을 했더니 학기말에 좌석이 바뀌어 짐을 옮겨야 하는데 내 책이 휴지통에 처박혀 있었다 창피해서 몰래 꺼내 보니, 바로 고릴라란 별명의 수학선생 고高가 그년이었다 돼지에게 던져 줄 걸 참 내가 눈이 삐었구나 했지. ♧ 목련 – 서병학 가지마다 알을 품고 부화시키는 듯 봉우리마다 새하얀 부리를 .. 2024. 7. 10. 강동완 시집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완) ♧ 노을의 눈물 노을 속으로 외눈박이 거인의 따뜻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노을 속 기타를 치는 황금빛 수염을 가진 마법사들이 벌레 먹은 구름 위에 살고 있다 마법사의 모자 속으로 뜨거운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난쟁이들은 뗏목을 타고 노을의 강으로 흘러들어 갔다 난쟁이들은 깊은 잠을 자기 위해 간혹 햇살로 모습을 바꿨다 웃을 다 벗은 아이들이 맨몸으로 노을 속으로 풍덩풍덩 뛰어 들었다 크레파스를 들고 노을 속에서 신비스런 산동네와 불빛 기득한 해바라기 꽃밭을 그렸다 잠에서 깬 난쟁이들이 노을 속에서 몸을 씻고 허겁지겁 아득한 사과를 먹었다 죽은 새들이 박제되어 앉은 우거진 숲 간혹 박제된 새가 살아서 구름 속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노을은 거인의 붉은 혓바닥 같았다 어린 사슴 한 마리 노을의 식탁 위에 자.. 2024. 7. 9. 임채성 시집 '메께라'의 시조(12) ♧ 무명천할머니길* 피를 쏟는 절규에도 하늘은 늘 침묵했다 검은 돌담 넘나드는 무심한 바람 앞에 얼룩진 무명천 같은 시간이 멈춘 골목 파도치는 새벽마다 귀청을 찢는 총성 욱신대는 그날의 기억 빈 턱에 도질 때면 방울져 흐르는 침을 눈물처럼 떨구었다 입을 막고 산다는 건 제 상처를 감추는 일 소스라치게 꿩이 우는 봄 산을 뒤로한 채 때 절은 붕대 하나로 반세기를 버티는 일 골목 어귀 이정표가 재우치는 겨운 걸음 상처 많은 백년초에 까치놀이 내릴 동안 바다는 낮술에 취해 피몸살을 앓고 있다 ---*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 진아영 할머니 집터로 이어진 마을 안길. ♧ 백조일손지묘* 남북전쟁 새된 총성 섬에 미처 닿기도 전 군용트럭 짐칸에서 유언장을.. 2024. 7. 8.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의 시(11) ♧ 대흥사 연리근 앞에서 -도민문학학교 기행 세상에 인연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모두 인연의 그늘에서 살아간다 부모님의 그늘에서 남편의 그늘에서 자식의 그늘에서 이웃의 그늘에서 나라의 그늘에서 하늘의 그늘에서 대흥사 연리근 느티나무 오백여 년 세월 동안 스치고 지나간 많은 인연같이 하늘의 뿌리에 손끝을 대어본다 아무 시름없이 하늘의 그늘 붙잡고 살아가고 싶다 ♧ 위태로운 산담 - 제주문화역사 나들이 아라동 언덕에 고한조와 전주 이씨 합묘 찾아 길 떠났다 가시덤불 우거진 모기 벌레 기승을 부리는 팔월 중순왕성한 여름 수풀 해치며 긁히고 찔리고 물리며 갑인년 대흉년에 쌀 삼백 석을 나라에 헌납하고 서당을 설립하여 유학제생들에게 학문을 권장했던 의로운 대정현.. 2024. 7. 7.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의 시조(6) [유고 동시조집] ♧ 이모와 보름달 그믐인지 초승인지 이모 눈썹 같던 달이 오늘은 한가위라 몰래 많이 먹었나 봐 감나무 가지에 걸린 저 달도 확 쪘네요 ♧ 그리운 할머니 오늘은 온 가족이 제사 준비 하는데 온종일 태풍 소식 한라산이 들썩들썩 바다도 와장창 깨진 할머니 거울 같아요 ♧ 부엉이 방귀 참나무의 포자가 소나무를 만나면 부엉부엉 부엉이 방귀를 뀐다지요 모양도 부엉이 같은 혹 방귀를 뀐다지요 부엉이가 방귀 뀌면 가을이 온다지요 받아라 이 혹 방귀 늦여름 늦더위야 그 소리 깜짝 놀라서 밤송이도 터져요 ♧ 남극노인성 지구의 밤하늘에 두 번째로 밝은 별이 서귀포 밤하늘에 반딧불이 같아요 바람만 살짝 불어도 꺼질 듯 깜빡여요 여름철 전갈자리 슬금슬.. 2024. 7. 6. 장영춘 시집 '달그락, 봄'의 시조(3) ♧ 나바론 절벽* 어쩌랴, 절벽 아래 저 파도를 어쩌랴방향키 놓쳐버려 떠밀리고 떠밀려온추자도 하늘길 따라소금꽃이 피었다 나바론의 요새에 숨어든 병사들처럼오늘 밤 태풍 전야 고요를 방심 마라구절초 봉오리 쓸며구구절절 되새기는 어쩌다 사는 일이 벼랑 끝에 서 있는 날누군가 뭍으로 와 자일 하나 건네면등 시린 저 꽃들조차바람이고 싶겠다 ---* 추자도에 있는 절벽이 나바론 요새를 닮았다 해서 지은 이름. ♧ 자작나무 소묘 누구의 눈빛으로 위로되는 날 있지 어제를 묻고 온 자작나무 숲속에 묵묵히 바람 맞서며 속살 한 겹 벗겨내는 아무리 힘들어도 구부리진 않았어 하늘이 내어준 그 높이를 따라갔을 뿐 지나는 길손에게도 손 내민 적 없었네 한겨울 꼿꼿함에 너를 보며 견뎠어사계절 아.. 2024. 7. 5. 이전 1 ··· 18 19 20 21 22 23 24 ··· 7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