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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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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우리詩' 8월호의 시(3) ♧ 밤과 낮 사이 - 이중동    푹신한 소파에 앉아 오징어땅콩을 씹어요 오징어는 고소하고 땅콩은 짭짤합니다 봉지에 손을 넣자 오징어는 땅콩을 숨기고 먹물을 쓰며 도망칩니다 손등에 묻은 얼룩에서 파도 소리가 납니다   집어등 출렁거리는 밤배를 탑니다 붉게 코팅된 실장갑을 끼고요 땅콩을 숨긴 오징어를 잡으러 밤바다로 갑니다 인기척을 감추려 그림자를 숨깁니다 울렁거리는 집어등이 구토를 하고요 실장갑 안으로 모여든 어둠에 깜박 잠이 듭니다   밭둑을 내달리는 그림자가 보이고 그림자는 깊은 구덩이로 빨려 들어갑니다 허공에 손을 휘젓던 아이, 잠에서 깨어나니 얼룩이 묻어납니다 골목길에 비릿한 바다 내음이 흩어집니다   숨어 있던 불안을 데리고 밭으로 갑니다 단단해진 땅콩이 주.. 2024. 8. 18.
'혜향문학' 2024년 상반기호의 시(4) [4․3 문학작품]    ♧ 큰 넓궤를 가며 – 강상돈     동광마을 4․3길엔 꿩소리도 총소리 같다 까만 알맹이 총알 같은 삼동열매 곁에 두고 목이 쉰 장끼 한 마리 따발총을 쏘아댄다   저 하늘 별빛마저 소스라쳐 숨어든 토벌대 추적 피해 굴속에서 지낸 50여 일 오로지 연기를 피워 뼈저리게 살아야 했다   발각된 순간에도 두려움 안고 살길 찾아 나선 기나긴 겨울 속을 숨 헐떡이며 걸어가는 아무도 지우지 못한 길 벌벌 떨며 나도 걷는다     ♧ 묘비명 – 강태훈     하늘도 울었다 4․3의 그해 동짓달 눈발이 간간이 내리고 있었다   바람 소리에도 놀라던 서른 초반의 그녀는   밭 돌담 모퉁이에 널브러진 끔찍한 남편의 모습에 말을 잊었다   밭 갈고 씨 뿌리던.. 2024. 8. 17.
계간 '제주작가' 여름호의 시(4) ♧ 신축년 5월에 - 문무병    시보다 더 좋은 친구에게 편지를 쓰니 유치한 생각들에 눈이 돋아 중학교 3학년 정도는 성숙하고 뜨거운 새롭게 쓰려도 시가 되지 않는 익어 없어진 수첩 찾으며 진짜 사랑편지 무심천 물소리 같은 사라봉 산책길에 주운 생각들 소매 속에 담고 와 오래된 미래를 만드는 꿈속의 하루를 샘에게 보냅니다.     ♧ 붉은귀거북 - 서안나    작년에 죽은 꽃이 귀신과 놀던 꽃이 귀만 붉은 붉은귀거북을 등에 지고 왔다   몸을 죽여 등껍질을 얻은 영혼은 어디쯤에서 분홍으로 돌아섰나 亞자 문살을 열면 결명주사로 입술 붉게 칠하고 뒤돌아 앉는 마음   별을 쓸고 온 어머니가 내일은 손님이 유서 깊은 연못을 지고 오겠구나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마.. 2024. 8. 16.
조직형 시집 '천 개의 질문' 발간 ♧ 시인의 말    나는 위로 받고 싶다는 말을 언제나 위로하고 싶다고 말하는 마음이다   늘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언제나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해 주위를 맴돌았다 들어갈 수 있을까 멈칫거리며 용기를 내어 시작이라고 발을 디밀어본다   힘주어 입 다물고 참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제 입을 떼기 시작했으니 내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을 찾아가고 싶다     ♧ 바람의 언덕   초원을 질주하는 말의 갈기처럼 생살을 찢는 바람에 등짝을 눕히고 함께 달리는 풀들이 있다   바람이 절벽을 타고 오르며 휘두르는 채찍에 눕고 눕히며 일어서고 일으키며 온몸이 찢긴다   보고도 눈감고 모른 척 물러서는 대양이 있다   뼈도 없이 풀들은 뿌리에 묶여.. 2024. 8. 15.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의 시(3) ♧ 삶의 한 방식    정직만이 삶의 방식 그리 쉽지 않았으리   한 소절 마디마디 결구를 다지며   텅 빈 속 채우려 했던 엇나가는 곁가지   수런수런 댓잎 소리 바람의 말 흘리나   반짝이는 그림자 둘 곳 없는 남루에   한뎃잠 깊이 내리니 뿌리마저 허공이네     ♧ 너의 이해     돗바늘 탱자 가시 한순간 찔린 손등   혹독히 파고들어 농이 차 뭉크러져도   그 누가 알아차릴까 이해했던 단 하나   덧난 가지 싹둑 자른 냉정한 오후도   가시는 눈물 같고 어쩌면 온순해져   서로가 맞닿은 자리 비켜 앉던 그 잠시   새순마저 초록으로 땡볕 여름 견디며   저를 눌러 넓힌 자리 그늘이 되는데   난 그저 지나쳐 온 날, 불쑥 솟는 가시였네     ♧.. 2024. 8. 14.
장영춘 시집 '달그락, 봄'의 시(6) ♧ 족쇄를 풀어춰    오늘도 탈출을 꿈꾼다, 저 문만 나서면   푸른 날 성긴 시간 태초의 그 길 따라 날마다 귀향을 꿈꾸는 슬픈 눈의 목각 기린   창 너머 초록 잎새 마구마구 손 흔들면 아프리카 드넓은 저 질주의 본능으로   소나기 맞으러 간다, 겅중겅중 목 빼 들고   캄캄한 밤하늘에 별빛 총총 수놓으면 코뿔소 작은 샘터에 무리 지며 마중 오겠지   마음은 이미 달리고 있어 족쇄를 풀어줘     ♧ 팔월의 시    생명이 있는 것들은 독기 어린 얼굴로 팔월의 들판 아래 만장일치 모여들어 비장한 다짐을 한다 씨알 한 톨 남기리   수은주 빨간 눈금 내려갈 줄 모르고 앞 다투며 달려오는 어긋난 시간 속에 볕에다 내다 걸어도 파랗게 익지 못하는   뜨거운 바.. 2024. 8. 13.